<Twilight zone>

 

2012.3.8-4.22

후원 / 로얄&컴퍼니(주)

갤러리 로얄GALLERY ROYAL

서울 강남구 논현동 36-8번지 로얄TOTO빌딩 2층

Tel. +82.2.514.1248

art.royaltoto.co.kr

Kim Eull

이관훈

 

 

     저 들판에 야산(野山)을 짓고, 너머의 바람을 쐰다. ● 김을은 작업실에서 하루 온종일 그리고 만들고 붙이는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틈틈이 사색(思索)하며 즐긴다. 삶의 무게보다 예술의 무게가 무거워진 지금 지루한 일상은 유토피아로 바뀌어가고 있다.

 

     마음가는대로 고집스럽게 살아온 그는 반세기동안 이어져온 한국미술의 관습을 역순으로 걸어왔다. 생(生)의 한 바퀴를 돌아온 시점, 그에게는 '드로잉'이라는 것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김 을 드 로 잉!" 그만큼 자기의 위치에서 드로잉의 존재감은 깊게 뿌리박혀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가 향유하는 예술의 끝, 드로잉의 끝은 어디쯤일까?

 

     2002년을 기점으로 그의 드로잉은 맹목적으로 달려왔다. 거의 매년 '작업-전시'를 지속하며, 더불어 드로잉북도 만들어냈다. 처음과 달리 주변인들로부터 '이제는 그만하지'라는 우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또 그리며 점점 더 예술의 덫에 빠져들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들은 김을 드로잉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지인이라는 덕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나 또한 잘 모른다. 하지만 그를 믿는다. 어떤 기회주의자보다, 전략적인 사람보다, 정치적인 사람보다,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보다, 미술사를 믿는 사람보다, 주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보다는 저 들판에 구름을 쫓는 野人 같은 김을의 진정성을 믿는다. 우리가 만들어놓고 정해놓은 언어와 행동의 규칙아래 우리는 무수히 지나치는 무의식보다 확연한 이미지와 글 그리고 말을 믿고 그것이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행해왔던 드로잉의 행간을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그 드로잉 너머의 생각을 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을은 저 들판, 저 野人 같은 삶을 위해 '날 것'으로써의 드로잉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는 예전에 '혈류도'를 그린 후 특정한 주제에서 벗어나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그리는 고민에 빠졌었다. 그 해결의 실마리를 드로잉으로 풀고, 현재 그 판타지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 판타지는 그의 나이 불혹의 끝자락에서 시작되어 이미지 언어를 다시 쓰듯 하나씩 언어를 찾아갔고, 십년이 흘렀다. 빠른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역주하듯, 가볍고 느린 언어의 질주는 인생역정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 한계를 넘은 자연스러움과 자율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삶이 예술의 무게로 바뀌다보니 온갖 상념들이 뒤섞인다. ● 사랑, 농담, 정념, 눈물, 도덕, 욕망, 아름다움, 상상, 영혼, 종교, 웃음, 진실, 꿈, 분노, 바람, 피, 장난감, 시간, 세계, 물리, 자연, 우주, 공간, 몸, 본질, 이상, 생명, 존재, 가치, 의문, 죽음, 현실, 원리, 그림, 정의, 역사, ... ● 이것이 김을의 생각으로 뒤범벅되어 화두라는 '빈 그릇'에 오랜 숙성을 거친 후, '드로잉'이라는 다양함의 변주에 리듬을 타게 된 것이다. ● 그 시작은 작았고 낱낱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낱낱들이 모여지면서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2009년 김을이 부여한 'my great drawings'이다. 뒤늦게 깨달은 드로잉은 그동안 그가 품어왔던 미술 아니 예술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는다. 드로잉이 단순히 '긋기'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척탄병처럼 김을은 세상의 모든 대상을 사유(思惟)함으로써 깨닫고 얻어지는 존재감을 찾고 재해석한다.

 

     김을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도 많고, 작업할 것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해가 뜨고 저물어가는 자연의 순리에 난감해한다. 하지만, "김을은 김을이다!", "그림 이 새끼!"라는 글자드로잉에서 그의 자존감이 느껴진다. 김을은 현실에 안주하는 꿈을 꾸지 않고, 들판에 야생하는 그냥 풀처럼 野人의 의연한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그는 넓은 들판에 조그마한 野山을 만들어 그 위에 홀로 서서 동쪽 한 번 바라보고, 서쪽 한 번 바라보고, 구름 따라 바람을 쐬며 새처럼 날고 싶어 한다.